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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전통공예이야기/ⓐ전통공예품

★옹기문화

by →다솜네텃밭 2018. 7. 11.

 

 

 

 

 

★옹기문화

간장, 된장, 김치 등을 담는 커다란 독이나 시루는 물론 굴뚝, 촛병, 등잔, 기와, 장군 등으로도 사용된 생활용품 옹기는, 금이 가거나 깨지면 바로 흙으로 돌아가는 자연에 가까운 그릇이다. 옹기가 언제부터 우리 생활 속에 쓰이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발효 식품으로 표현되는 우리 음식에 대한 기록으로 옹기의 사용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옹기란「질그릇」과「오지 그릇」을 가리키는 말로 우리 민족 고유의 생활 그릇이다. 질그릇은 진흙으로 그릇을 만든 후 잿물을 바르지 않은 채 6 백 ~ 7 백 도로 구워낸 것이다. 오지 그릇은 질그릇에 오지 잿물을 발라 1 천 2 백 도 이상의 고온에서 구워낸 반지르르한 그릇이다. 우리가 흔히 김장독과 장독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옹기는 값이 싸고 튼튼해 생활 구석구석에서 이용되었다. 서울시 도봉구 쌍문동에 위치한 옹기민속박물관에 소장된 옹기를 살펴보면 우리네 조상들이 얼마나 다양하게 옹기를 활용했는지를 알 수 있다.

간장, 된장, 김치, 물 등을 담는 커다란 독이나 시루는 물론 굴뚝, 촛병, 등잔, 기와, 소줏고리, 주전자, 장군 등 옹기 생활용품으로 쓰여져 왔다. 이와 같은 옹기의 또 다른 장점은 금이 가거나 깨지면 바로 흙으로 돌아가는「자연에 가까운 그릇」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 발효 음식과 함께 한 옹기의 역사

옹기가 정확히 언제부터 우리 생활 속에 쓰이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긴 세월 동안 일반 서민들의 삶속에 자연스레 스며들어 우리의 식생활과 생업 등 생활 전반에 걸쳐 끈질기게 살아남아 왔다.

삼국시대 이후 그릇을 만드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토기는 점차 단단하고 가벼운 토기로 만들어졌다. 그 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청자, 분청사기, 백자와 같은 새로운 도자기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서민들의 친근한 벗으로 자리한 것은 옹기였다.

지금은 고려청자나 조선백자의 아름다움이 과거의 유물로만 남고, 그 전통과 제작 방법은 거의 단절되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여기에는 임진왜란의 결과로 나타난 조선 요장(窯場)의 황폐화와 도공의 납치, 한일합방 이후 일본의 조선백자 말살 정책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옹기는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았다.

우리의 독특한 음식 문화 덕택이다. 발효 식품 위주의 우리 음식 문화에서 옹기는 저장고로서 절대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옹기의 특징은 바로 그 '저장력'에 있다.'곰삭은 맛'으로 표현되는 우리나라 음식은 대부분이 발효 식품이다. 그 음식을 저장하는 그릇은 음식의 발효를 도와주는 것이어야 했다. 찰흙 안에 들어 있는 수많은 모래 알갱이가 그릇에 미세한 공기 구멍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옹기의 안과 밖으로 공기를 통하게 해서 음식물을 잘 익게 하고 오랫동안 보존해 준다. 된장, 간장, 김치, 젓갈 같은 발효 음식의 저장 그릇으로 옹기가 많이 사용되어 온 것도 이러한 옹기의 특성 때문이다.

쌀이나 보리, 씨앗 등도 옹기에 넣어 두면 다음 해까지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다. 이는 옹기를 가마 안에 넣고 구울 때, 나무가 타면서 생기는 검댕이 옹기의 안과 밖을 휘감으면서 방부성 물질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문헌상 옹기에 대한 기록은 1834 년 간행된 서유구의《임원경제십육지(林園經濟十六志)》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옹(甕)은 일상 생활에서 사용되는 토기 그릇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주로 곡주와 장류를 담아 두기 위해 사용된 단지의 한 종류라고 정의하고 있다. 하지만《삼국사기》,《위지동이전(魏志東夷傳)》 등과 같은 그 이전의 문헌에서도 옹기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 이전부터 장류나 술, 곡식 등의 중요한 저장고로 이미 옹기가 사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옹기의 정확한 발생 시기는 알 수 없다.

조선시대 옹기의 모습은 풍속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집안 한 켠에 커다란 독과 항아리, 단지가 가지런히 서있는 장독대가 있고, 들판에는 새참을 즐기는 농부들 주변으로 널려있는 그릇과 술병 등이 있다.

그것으로 옹기의 형태와 흐름을 찾아 볼 수 있다.

옹기를 만드는 과정과 특성

옹기는 자연으로부터 최소한의 흙, 물, 불, 바람을 빌려와 만든 그릇이다. 흙으로 그릇의 모양을 빚고 부엽토와 재, 물을 섞어 만든 잿물 유약을 입혀서 구워낸다.

옹기를 만드는 과정은 흙치기, 흙깎기, 옹기 밑바닥 만들기, 태림 내리기, 태림 앉히기, 말리기, 유약 만들기, 유약 바르기, 가마에 불때기, 가마 식히기 과정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만들어진 옹기는 야산에서 채취한 찰흙, 부엽토, 재를 섞어 만든 잿물을 입혀 구워낸다. 때문에 우리 몸에 전혀 해롭지 않다.

옹기는 서민을 위한 그릇이다. 장독대, 부엌, 곳간 등에서 사용되는 생활용품에서부터 민간 신앙용, 민간 악기 등 집안 곳곳에서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또한 지역적인 기후와 자연 환경에 따라, 어떠한 용도로 사용되는지에 따라, 만드는 사람에 따라 각각 다른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인천, 경기, 강원, 충청 등 중부 지역의 옹기는 그 모양이 길고 배의 폭이 좁다. 날렵한 항아리 모양을 기본으로 하여 입과 밑 지름의 크기가 비슷하다.

전라도 지역은 대체적으로 원형에 가깝다. 달덩이 항아리로도 불리며, 경상도 옹기보다 어깨가 좁고 배 부분이 넓은 것이 특징이다. 표면의 색은 진한 갈색이 많다.

간혹 연홍색, 진홍색 빛깔을 띄기도 한다. 경상도 지역의 옹기는 배가 불룩하게 나왔다. 어깨 부위가 잘 발달되어 있으며 입지름과 밑지름이 좁은 편이다. 색은 연한 갈색에 가깝다.

제주도는 토질의 특성상 옹기가 발달되지 못했다. 철분이 많아 찰흙을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지역의 옹기는 주둥이와 바닥이 좁고 배가 약간 불룩하다. 반면에 날씨가 추운 북부 지역 옹기는 햇빛을 많이 받기 위해서인지 전체적으로 입이 크다. 잿물의 빛깔도 연하고 부드럽다.

생활 속의 옹기로 거듭나는 옹기 문화

주거 환경의 변화와 산업 발달은 옹기를 차츰 우리 생활에서 사라지게 했다.

약토잿물 대신 광명단(광택이 잘 나고 색이 좋으며 낮은 온도에서도 용융이 잘 된다.

덕분에 연료비가 적게 들지만, 그릇의 상태가 나빠지고 인체에 해롭다)을 사용한 질 떨어진 옹기가 판매되기도 했고, 가볍고 실용적인 스테인리스 용기와 합성 수지 용기가 옹기의 자리를 대신했다.

최근엔 김치 전용 냉장고까지 생겨났다. 옹기의 자리가 더욱 좁아지고 있는 형편이다.

다행이 최근 들어 사라져 가는 전통 옹기의 우수성과 아름다움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생기고 있다. 다시 우리 생활속의 용기로 자리매김하려는 움직임이다.

실용성을 살린 옹기를 제작하고, 그것을 생활 속으로 다시 끌어올리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인테리어 분야에서의 옹기 활용은 그러한 흐름의 일부이다. 깨진 옹기 조각을 활용한 지붕, 테이블과 의자, 촛대, 벽걸이 장식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최근 오리엔탈리즘의 영향은 이 흐름에 새로운 가속도를 붙이고 있다. 이 글은《생활 속의 옹기》(옹기 민속 박물관),《장광옹기》(동아갤러리),《샘이 깊은 물》(뿌리깊은 나무)등의 자료를 참조하였습니다 .

 

 

출처:네이버 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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