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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전통공예이야기/ⓐ전통공예품

★유달리 많았던 정자문화

by →다솜네텃밭 2018. 7. 11.

 

 

 

 

 

 

★유달리 많았던 정자문화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옆에, 그리고 수려한 경관이 보이는 곳에는 어디나 그림 같은 정자가 있다.

비록 인공의 구조물이긴 해도 오랜 세월 대자연에 동화되어 시간의 자취가 역력한 채 의연하게 서 있는 정자는 처음 대해도 전혀 낯선 모습이 아니다.

사계절의 변화가 뚜렷하고 자연경관이 빼어난 우리 나라는 일찍부터 정자문화가 발달해 왔다.

자연을 감상하고, 자연을 닮으려는 정자는 휴식공간으로서 뿐만 아니라 시인묵객들이 모여들어 한담을 나누며, 시를 짓고 풍류를 즐겼으니 우리 나라 시가문학의 산실로서의 구실도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나와 있는 우리 나라의 누정, 즉 누각과 정자의 수가 무려 885 개나 되었다고 하니, 이로써 정자는 이 땅에 살았던 선인들의 마음가짐이 어떠했는지를 잘 말해 주고 있다.

정자에 얽힌 이야기도 자못 흥미롭다. 예천에 있는 용두정(龍頭亭)은 정자를 짓기 위하여 와룡산 기슭을 파자 갑자기 피가 솟아나와 용의 머리를 잘못 찍은 것으로 생각하여 그 자리에 더욱 정성들여 정자를 지었다고 하는 유래가 전해 오고 있다. 정자가 서 있는 곳에는 으레 이처럼 재미있는 설화가 있어 사실감을 더해 주고 있는데, 특히 애국충정과 연관된 설화가 많아 우리 선조들의 정자관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전북 진안에 있는 충목정(忠木亭)은 경술국치로 나라의 국권이 상실되자 이를 통탄하고 임금을 그리며 북향하여 쓰러진 괴목이 3 년이 지나서 되살아나므로 나무의 충정을 상기시키고자 나무 밑에 정자를 세웠다고 한다. 또 시흥의 고송정(枯松亭)은 마하산정의 바위 위에서 영월의 단종을 바라보며 김충주라는 사람이 흘린 눈물에 나무가 고사하므로 그 충정을 기려 정자를 세웠다는 설화가 전해 내려오고 있고, 정읍의 군자정(君子亭)은 황폐화된 연당을 손보고 그 곳에 정자를 지으니 많은 인재가 배출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정자를 세우는 데는 위치를 가장 중요시하였다. 혼자여도 무료하지 않게 자연의 정취를 즐길 수 있는 언덕이라든가, 사철 푸른 소나무가 강물 소리에 기상을 더해 가는 강변, 또는 지나가다 잠시라도 머물고 싶은 경치 좋은 곳이면 어김없이 정자가 들어섰다.

강이나 계곡에 있는 정자는 강계연변형(江溪沿邊形)이라 하여 계곡의 경치를 한눈에 볼 수 있고, 백사장의 광활함이나 물에 비친 달그림자를 바라볼 수 있도록 세워졌다.

또 연못에 세운 정자는 지변형(地邊形)이라 하여 자연적인 못이나 인공적인 연못의 중앙 또는 한쪽 가에 세워 물과 주변의 공간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하였으며, 산마루나 언덕에 세운 산정형(山頂形)은 주위의 숲과 조화를 이룬 곳에 배치되어 때로는 망루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정자는 그림 속에도 많이 등장하는데 자연의 절경을 그림으로 옮긴 동양화에는 거의 빼놓지 않고 정자가 그려져 있다. 수십 길이나 되는 바위 위, 혹은 바닷가나 강가에는 어김없이 정자가 등장하여 화가들에게도 자연의 일부분으로 인식되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정자는 벽이 없고, 기둥과 지붕만으로 구성되어 있는 탁 트인 공간이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조망할 수 있도록 높은 곳에 지어진 것도 정자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우리 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바닷가에 세워진 정자가 많다. 정자는 자연의 암반이나 초석 위에 세워지는 것이 보통이므로 대들보를 쓰지 않고 귀접이 천장을 하거나 네 귀의 추녀가 정상에 오는 구조법을 사용한다.

정자는 원래 오두막집이나 그와 비슷한 건축물에서 발전한 것이어서 비록 기와를 이은 지붕이긴 하나 네 귀를 날카롭게 하지 않고 둥글림으로써 모나지 않은 한국인의 심성을 표현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정자에는 거기에 걸맞는 시구를 새긴 주련을 기둥에 달거나 정자의 성격을 표현하는 현판을 달기도 하였는데 현판의 둘레를 당초문이나 초각 등으로 새겨 치장하기도 하였으며, 단청으로 건물의 멋스러움을 더하기도 하였다.

정자는 현대에 와서도 맥을 잃지 않고 옛 모습을 이어오고 있다. 현대 건축물의 상징인 아파트 단지나 공원과 위락시설에도 정자가 들어서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의 이치를 배우려 한 옛 선인들의 자취를 느낄 수 있게 하고 있다.

우리 민족과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정자는 이제 비록 시간의 변천에 따라 많이 사라지거나 훼손되어 그 옛날의 풍광을 잃고 있으나 자연을 닮으려 한 선인들의 소박한 자취와 함께 유구한 세월을 흘러오고 있는 것이다.

 

 

 

출처:네이버 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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